빈번히 느끼는 거지만 글을 읽기는 쉬워도(물론 글 나름이겠지만 상대적으로) 글을 쓰는 건 참 힘들다. 책을 읽고는 단 몇 줄이라도 나름의 감상을 남겨놓으려 했지만 이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글쟁이'들이 참으로 대단해보이는 순간이다.
〈프랑스 대혁명〉이야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환상과 영감을 안겨주는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정작 혁명의 자세한 진행과정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그러던 차 쟝 마생의 『로베스피에르 - 혁명의 탄생』을 읽고 로베스피에르에게 꽂힌 김에 프랑스 혁명을 다룬 책을 찾아 보았는데 의외로 눈에 딱히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그 중 선택한 것이 프랑스 혁명에 대한 가장 교과서적인 저작이라는 알베르 소부울의 『프랑스 대혁명사』인데 1994년에 발행된 촘촘한 활자의 책인데다 그나마 하권은 품절이다. 정장본으로 선명한 글씨체에 줄간격도 보기좋게 띠어져 있는 요즘 책들에 비하면 제본소에서 허접하게 나온 해적판같은 몰골이지만 구세대인 내게는 이 쪽이 오히려 진짜 책처럼 느껴진다.
같은 시기에 선택한 에릭 홉스본의 『혁명의 시대』에 프랑스 혁명이 너무 짧게 소개된 데 대한 안타까움을 갖고 (밧뜨, 책은 훌룡하다. 무엇보다 짧은 기간도 아니고 단일 사건도 아닌 몇백년에 걸친 근대사를 일관성있는 시각과 탄탄한 구성으로 훑는데 이는 내공의 힘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에릭 홉스본 이후로 좌파 시각의 역사에 대해 쓴다는 것은 홉스본의 저작에 주해를 다는 것 뿐이라는 말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한마디로 그런 사람이다. 참고로 에릭 홉스본은 이 〈혁명의 시대〉는 이중혁명(시민혁명과 산업혁명)에 따른 자본주의 세계의 형성과정이라고 말한다.) 읽기 시작했는데 과연 교과서같은 책이다.
알베르 소부울의 책에는 영웅도 없고 드라마도 없다. 물론 당시의 의회의 형성과 주도권을 잡기 위한 치열한 논쟁과 혁명을 고비 때마다 살려낸 세 번의 민중 봉기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하고 있지만 소부울은 조세제도, 화폐제도, 경제제도, 농촌 생활의 궁핍함, 파리의 빈민들의 열악한 생존 환경, 약진하는 부르주아 계급과 특권층의 대립에 따른 정치제도의 변화, 주변 국가의 프랑스에 대한 견제등 당시의 사회·경제·정치·역사적 상황들을 중점적으로 기술한다. 당연히 당시의 명사들, 루이 16세, 로베스피에르, 생쥐스트, 마라, 당통등의 개인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인은 결국 어느 위치의 점유자일 뿐이다.
『프랑스 대혁명사』(상) 권은 1789년부터 1793년까지 부르주아가 사회 전면에 등장하고 민중들의 궁핍이 극에 달하면서 삼부회 구성, 테니스 코트의 선언, 바스티유 습격, 왕정의 몰락, 루이 16세의 도주와 체포, 전쟁 발발, 지롱드파의 몰락과 공포정치 시작에 이르는 동안의 상황들을 숨가쁘게 쫓아간다. 왕정, 특권층(귀족), 부르주아, 민중(상퀼로트)의 네 개의 세력이 대치하고 프랑스 혁명을 저지하려는 외국의 개입이 계속되면서 혁명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처음에는 왕정을 견제하고자 부르주아와 손을 잡았던 특권층이 부르주아가 권력의 주도권을 잡으려 하자 다시 부르주아와 대립하고 민중의 뒤에 숨어 특권층을 격퇴한 부르주아는 다시 민중을 제압하고자 혁명을 '얼어붙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프랑스 대혁명의 진행과정 내내 변하지 않는 것은 권력에 대한 탐욕, 기득권을 결코 놓치지 않으려는 권력자의 무자비한 폭력이고 혁명을 분쇄하려는 왕정,특권층,외국의 공세에 맞서 혁명을 지켜내는 것은 언제나 민중이다. 거리에서 전쟁터에서 싸우고 죽어나가는 이들은 늘 민중이나 법을 제정하고 권력을 휘두르며 정책을 집행하는 이들은 의회 안에서 말로 싸우는 자들이다.
물론 이들도 실제적 죽음을 맞기는 한다. 의회 안에서 상퀼로트와 연대했던 산악파가 전쟁에 이기는 것보다 혁명을 중단시키기를 바라는 지롱드파와의 타협을 포기하고 민중이 권력을 장악하는 쟈코뱅 공화국을 수립하면서 공포 정치가 시작된다. 그러나 그동안 기득권층에게 학살당한 민중들의 수를 생각한다면 단순히 이름값 있는 명사들이 단두대로 보내진다고 굳이 이들의 죽음에만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듯 싶다. 결국 '공포'는 '그들'의 공포라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이 쟈코뱅 공화국의 혁명령 시기를 '공포정치'로 로베스피에르를 '독재자'로 보는 부정적인 인식이 통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는 달리 쟝 마생은 물론이거니와 에릭 홉스본이나 알베르 소부울은 이 때의 '공포정치'를 경황상 독재가 불가피했던 시기였다고 설명한다. 에릭 홉스본은 공포정치, 즉 쟈코뱅 공화국 시기를 "자신의 나라를 보전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유효한 방법"이었다고 역설하며 알베르 소부울 역시 공포정치를 시행해야 했던 필요성에 대해 부인하지 않는다. 당시 프랑스는 혁명을 저지하려는 반동 세력의 끊임없고 집한 도발에 맞서면서 혁명의 전파를 두려워하는 주변 국가간의 전쟁을 함께 치러내고 있었다. 아시냐의 가치가 하루 아침에 반토막 나버리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먹을 빵이 없는 식량난 속에서 특권층과 부르주아는 오직 소유권에 대한 자유만을 인정하고 자기의 기득권을 수호하는 데에만 눈이 벌개진 채 심지어 외국과 내통해 혁명세력, 자기 나라의 민중을 말살시킬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들을 절대왕정에서 해방시켜 준 것이 민중이었는데 민중은 여전히 굶주리고 있었고 심지어 외국군대 앞에 생명을 위협받고 있었던 것이다.
도처가 민중의 적이었다! 프랑스 민중들이 국가·국민 개념을 형성하게 된 것도 이 때라고 한다. 혁명을 지키는 것이 곧 국가를 지키는 것이었고 혁명을 부정하는 것이 곧 국가를 팔아치우는 것이었다. (소부울은 루이16세가 알려진 대로 멍청하고 우유부단한, 무력한 한 인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외세를 끌어들여 자신의 국민들을 학살하고 왕정을 복고시키려 했던 영악한 왕이었다고 말한다. '비운의 왕비 마리 앙뜨와네뜨'가 정부 페르젠과 계획한 일도 자신의 친정인 오스트리아를 불러들여 프랑스를 짓밟게 하는 일이었다.)
안팎의 적에 둘러쌓인 고사 상태의 프랑스 민중들이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은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승리를 불러온 것은 오직 혁명의 원동력이었다. 혁명의 원동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동세력을 물리쳐야 했고 그결과 혁명을 멈춰 세우려 전쟁을 일으켰으나 프랑스의 승전으로 계산이 빗나가버린 지롱드파가 숙청되고 쟈코뱅 공화국이 건설되었다. 그것이 "프랑스 혁명기간 중 가장 냉혹하고 영웅적이었던 시대(에릭 홉스본)"이었던 공포정치의 시작이었다.
그렇다면 공포정치는 왜 실패했을까? 에릭 홉스본은 산악파(쟈코뱅)과 민중(상퀼로트)간의 균열이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말한다. 쟝 마생도 인정했듯이 로베스피에는 민중 없이는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속해있던 중류계급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는 루소 사상의 세례를 받은 계몽주의자였고 민중은 계몽의 대상이었다. 에베르와 같은 보다 급진적인 상퀼로트 지도자를 과격파라는 이유로 숙청하면서 상퀼로트와 쟈코뱅간의 동맹에는 균열이 생겼고 산악파가 반대파에게 독재자로 지목당해 숙청당할 때 민중은 봉기하지 않았다. 로베스피에르가 계급의 한계를 넘어 진정으로 민중과 함께 했다면, 공포정치가 민중과 유리되지 않고 진정한 민중 독재를 펼쳤다면 프랑스의 이후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없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은 "이후의 모든 혁명운동에 모델을 제공(에릭 홉스본)"했다. 소부울의 프랑스 혁명사를 읽다보면 왜 공산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독재'라는 말에 집착하지 않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생각함다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부르주아 독재를 타도하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헌법 1조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말도 결국 "국민 독재"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소부울의 『프랑스 대혁명사』의 가장 큰 장점은 특정한 개인 또는 사건에 초점을 맞춘 자극적인 서술이 아니라 거대한 흐름을 쫓아간다는 것이다. 그의 책에서 반동세력에 맞서 혁명을 주도해나가는 것은 프랑스 민중이다. 1700년대 후반이니 지금으로부터 300년도 더 된 그때, 바로 직전까지도 절대 왕정의 치하에 있던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급진적인 사고를 형성할 수 있었을까? 혁명을 밀어붙이는 모든 원동력의 근원이었던 이들의 혁명의지는 당시의 지식인들이 넘지 못한 시대적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버리고 있다.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 봉기한 것이라지만 이들의 극적인 자각은 놀랍기만 하다. '집단 지성'의 기적이라고나 할까 물질적 변화는 정신을 변화시키고 자각한 정신은 물질적 현실을 뒤엎는다.
'부패할 수 없는'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관심이 주였던 나지만 그보다 민중이 더 급진적이고 더 위대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로베스피에르가 혁명을 만든 것이 아니다. 혁명이 로베스피에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혁명을 만든 이들은 프랑스 민중이었다.
끝으로 에릭 홉스본이 수려한 필체로 로베스피에르를 묘사한 글이 너무 뽀대나서 인용해 본다. 분명히 혁명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있었지만 민중과 일체가 되는 것에 실패해 결국 민중의 외면 속에 기득권층에게 죽임을 당한 로베스피에르를 보며 누군가가 떠올랐다면 너무 심한 비약이겠지 -.-
"미덕을 개인적으로 독점한, 다소 과도한 의식을 지닌 멋쟁이. 이 냉철하고 광신적인 변호사에 대해 냉정했던 역사가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어떤 인간도 중립일 수 없는 무시무시하고 영광스러운 혁명력 2년의 체현자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사람은 아니며 편협했으나 혁명을 부상시킨 인물 중 그 주위에 숭배가 생겨났던 유일한 인물. 그에게 쟈코뱅 공화국은 전쟁 승리를 위해 창출된 장치가 아니라 하나의 이상이었다. 그것은 정의와 미덕의 무섭고도 영광스러운 통치이며 이러한 통치 아래 국민이라고 하는 관점에서는 선량한 시민들이 모두 평등하였고 인민들은 반역자들을 죽였다. 그는 공식적인 독재권력은 물론 심지어 관직도 없는 공안위원회의 한 위원에 불과했으며 그의 권력은 인민의 권력이었다. 인민이 그를 버렸을 때 그는 몰락했다."